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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by 꽃바구니 2023.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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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모파상은 19세기 유럽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며
보바리 부인을 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자연주의 문학은 인간의 삶을 아무런 의도 없는 객관적인 자연 현상처럼 바라보는 문학을 말합니다.
호들갑스럽게 의미를 부여하고 과잉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삶의 모든 희로애락을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묘사하는 문학입니다.
모파상은 1850년에 자연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드 지방에서 태어났고
20대 프러시아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가 전쟁의 환멸을 느끼고 문학 활동에 전념합니다.
하지만 20대 후반부터 시력 감퇴와 우울증, 성병 등으로 신경과민에 시달립니다.
이 와중에도 화려한 사욕의 생활을 즐기며 여성 편력을 과시하고, 100편이 넘는 중단편을 남깁니다.
본능에 충실한 자연주의 문학의 대가답게 자신의 본능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며 살았지만
모파상은 한 차례의 자살 시도 끝에 43이라는 젊은 나이에 파리 교회의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여자의 일생은 모파상을 프랑스 문학의 스타로 만들어준 대표작이며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가진 잔느라는 여인이 온갖 삶의 비극을 거치며
그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2. 줄거리

17살 잔느는 노르망디 지역에 푀펠성을 소유한 남작 부부의 외동딸로
수녀원에서 소녀 시절을 보냈던 터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여인입니다.
여유롭고 낙천적인 부모님을 닮아 너무나 쉽게 삶을 낙관하던 잔느는 자신이 곧 멋진 남자를 만나
바다가 보이는 이 조용한 성에서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을 사제의 소개로 매혹적인 외모를 가진 귀족 청년 줄리앵을 만나게 되고 곧 사랑에 빠집니다.
줄리앵도 잔느의 아름다움과 재산에 반해 속전속결로 청원합니다.
그리고 순진했던 잔느는 순식간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결혼식장에 들어서게 됩니다.
하지만 행복하고 설레는 사랑의 순간도 잠시

그녀는 첫날밤에 순결한 처녀성을 난폭하게 빼앗은 남편에게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누군지도 잘 모른 채
발아래 뚫려 있는 구멍 속에 빠지듯 결혼이란 구멍 속에 빠져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뒤이은 신혼여행에서도 줄리행은 장사치들과 끊임없이 푼돈을 흥정하며 말다툼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고
욕망에 들떠서 대낮에 호텔방으로 잔느를 끌고 다니며 잔느를 창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잔느는 곧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평생 평행선을 걷게 될 거라고 직감합니다.
여행의 끝 무렵, 줄리앵은 벌써 매사에 심드렁해져서 잔느를 본 채 만치 했고 여행에서 돌아온 잔느는 생각합니다.

'이제 신혼 초의 달콤한 현실이 일상적인 현실로 변하려 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매혹적인 불안에 막을 내리는 현실인 것이다.
그렇다 이제 기대는 끝난 것이다. 그러니 이제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

신혼여행 후 쥘리앵은 잔느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재산 관리와 농장 일에만 완전히 몰두합니다.
잔느는 자신이 품고 있던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녀 로잘리가 뜬금없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내아이를 출산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줄리앵은 사생아를 낳은 시녀를 내치려 했지만 자네는 그녀의 처지를 딱히 여겨 아이와 함께 거둬줍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잔느는 로잘리가 낳은 아이 아빠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침대에 남편 줄리앵과 로젤리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충격을 받은 잔느는 집을 뛰쳐나가 맨발로 눈길을 내달리다 의식을 잃고 맙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의식을 되찾은 후에 자신이 원수 같은 줄리앵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위 불륜에 대해 알게 된 자네의 아버지는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지만
마을 사제는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두 사람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고 막아섭니다.
결국 아버지는 사제에게 밀려 사위의 불륜을 눈감아주고 딸과 사위를 억지로 화해시킵니다.
그리고 사위의 아이를 낳은 로잘리가 신랑을 찾을 수 있도록 가문의 농장 하나를 지참금으로 주고 그녀를 내보냅니다.
로젤리가 떠난 집에서 잔느는 곧 아들 폴을 출산합니다.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자네는 아이를 보는 순간 자신이 모든 절망으로부터 구원받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무심한 남편에 대한 불만 잊은 채 아이만 바라보고 매달리는 열성적인 극성 어머니로 돌변합니다.
그사이 줄리앵은 어느 백작 부인과 또다시 불륜에 빠집니다.
잔느는 곧 이를 눈치채지만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별로 충격을 받지도 않습니다.
다만, 잔느는 남편을 비롯해서 매일같이 남녀 간의 부정한 밀회에 대한 소문이 줄을 잇던

시골 마을의 들끓는 욕망에 환멸을 느낍니다.
심지어 죽음을 맞은 어머니의 옛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어머니마저 결혼 생활 중에 불륜을 저지른 흔적을 발견하고 분노합니다.
작가 모파상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동물적 욕망 앞에 무기력한 잔느의 모습을 통해

대자연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한편, 마을에 새로 부임한 톨비약 사제는 마을을 휩쓸고 있는 욕정의 기운을 감지합니다.
그는 주일의 시골뜨기 청중을 향해 욕정을 단죄해야 한다는 벼락같은 연설을 퍼붓고
남녀의 부정한 미래를 막기 위해 달밤에 마을 곳곳을 정찰하러 다닙니다.
모파상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이 톨비약 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를 통해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자연에 위배되는 일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톨비악 사제는 곧 줄리엔과 백작 부인의 불륜도 감지하고

잔느와 백작을 각각 찾아가 배우자의 부정을 단죄하라고 주장합니다.
이미 쇼윈도 부부 생활을 하던 잔느는 이를 외면했지만 부인을 너무나 사랑해서 배신감에 떨던 백작은 어느 봄날
줄리엔과 백작 부인이 함께 있는 해안가 협곡의 간이 오두막으로 갑니다.
그리고 오두막을 바깥에서 걸어 잠근 채 오두막을 가파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사람들은 달걀처럼 산산조각 난 오두막의 잔해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줄리엔과 백작 부인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줄리앵의 죽음이 톨비악 사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안 자르는 이제 더 이상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습니다.
아들 폴이 12살이 되어도 영성체를 받게 하지 않자 이웃들은 그녀가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합니다.
이에 맞서 잔느는 말합니다.
"교회에 나가지 않고도 신을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신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마음속 깊이 신의 선의를 믿는 저로서는, 신과 저 사이에 어떤 사제들이 개입할 때, 더 이상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 어떤 종교나 윤리보다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믿었던 모파상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잔느는 폴를 집 안에서만 애지중지 키우고, 아이는 엄마의 숨 막히는 치마 폭 속에서
아는 것도 별로 없는 정신적 유화로 머물게 됩니다.
청년이 되어서야 폴은 기숙사 학교로 가며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자유를 즐기며 학교 수업도 빼먹고
도시의 창녀와 사랑에 빠져 여기저기 빚을 지며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잔느가 이 사실을 알고 폴를 집으로 데려와 맛있는 음식을 해먹이며 애지중지 돌보면서 그의 마음을 돌리려 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숨 막히는 사랑보다 창녀와의 자유로운 사랑이 더 간절했던 폴은 어느 날 선원들과 배를 타고 도망칩니다.
아들을 배신해 잔느는 폭삭 늙어버립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이 창녀와 함께 런던에 있고,
빚을 갚기 위해 아버지의 상속분을 앞당겨 달라는 아들의 편지를 받게 됩니다.
잔느는 돈보다도 폴이 자신을 잊지 않고 편지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습니다.
이후 폴은 수시로 큰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편지를 보내고 잔느는 아들에게 쉴 새 없이 막대한 돈을 부쳐댑니다.
그러다 살고 있는 푀플성과 성에 딸린 두 농장까지 저당 잡히게 됩니다.
홀로 남은 늙고 지친 잔느 앞에 어느 날 남편의 사생활을 낳았던 하녀 로젤리가 찾아옵니다.
로잘리는 자신이 잔느의 아버지가 지참금으로 준 토지 재산 덕분에 성실한 남편을 만나 평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고,
얼마 전 아들을 장가보내고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지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도운 잔느 가문에게 보은 하기 위해 홀로 남은 잔느를 보살펴주겠다고 나섭니다.
그녀는 빚더미에 앉은 잔느가 푀펠성을 팔아 이사하는 것을 돕고,
잔느가 아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재산마저 퍼주는 것을 막기 위해 돈 관리도 알뜰하게 대신해 줍니다.
절망에 빠진 잔느를 구한 것은 신이 아니라 과거에 유부남과 부정을 저질러 사생활까지 낳은 여인이었습니다.
모파상은 이를 통해 진정한 구원은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부정을 저지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온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잔느는 또다시 폴의 편지를 받습니다.
함께 지내던 창녀가 사흘 전에 자신의 딸아이를 낳은 후 죽어가는데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아이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사생활을 낳은 경험이 있는 로잘리는 즉시 폴의 아이를 데리러 떠나고 며칠 뒤 아이를 안고 기차역에 나타납니다.
잔느는 폴의 아이를 받아 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부드러운 포근함이, 생명의 열기가 옷을 통과해 다리에 이르더니 살 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 무릎 위에 잠들어 있는 작은 생명의 체온이었다.
그러자 무한한 감동이 그녀에게 밀려왔다.
그녀는 갑자기 포대기를 벗겨 아직 보지 못한 아기의 얼굴을 보았다.
자기 아들의 딸이었다'
죽음같이 절망적인 삶을 살다가 너무나 오랜만에 생명의 환희를 느껴 아이에게 키스하는 잔느를 보며 로잘리는 말합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랍니다."

 

3. 마무리

그 어떤 불행한 삶이건 행복한 삶이건 해가 뜨는 날도 있고 소나기가 내리는 날도 있다는 것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자연 현상처럼 흘러가는 게 우리의 삶이라고 작가 모파상은 말해주는 듯합니다.
그러니 내 인생에 소나기만 내린다고 우울해할 건 아닙니다.
계속되는 난관 앞에 좌절하곤 하는 우리에게 두 세기 전에 작가가 건네는 허심탄회한 위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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