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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데카당스문학의 대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by 꽃바구니 2023.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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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소개

대인공포증과 가면성 우울증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다소 파격적인 소재의 이 작품은
개인주의 시대에 인간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애독서로 꼽히고 있습니다.
작가 다자요사무는 1909년에 일본에서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고,
중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병약한 어머니의 무관심과 아버지의 이른 죽음,
친한 친구의 자살 등으로 방황하다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화류계에 빠져들었고,
당시에 불법으로 여겨지던 공산주의 운동에도 심취합니다.
이 운동을 하며 대지주 가문 출신인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시달렸고
아마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가면성 우울증도 앓았던 것 같은데
그는 약물 중독, 정신병원 감금, 계속되는 불륜
내연녀들과의 다섯 차례 자살 시도 등 바람 잘 날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와중에 그는 개개인의 내면에 담긴 패패주의와 허무주의를 강조하는
일본식 데카당스 문학을 이끌며, 패전 이후 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 독자들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도 끝내 이 허무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39살의 젊은 나이에 연인과의 동반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인 1948년에 발표한 <인간 실격>은 그의 강렬한 삶을 반추하는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너무나 쉽게 거짓과 비만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질려
어린 시절부터 대인공포증과 감염성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인간 실격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받고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마는 한 남자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2. 줄거리

요조는 시골 부잣집에서 눈에 띄는 잘생긴 외모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행운아로 불리고 있지만,
그의 대가족은 으스스한 공포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소통을 모르던 가족이어서 그는 늘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또 어린 시절 하인과 식모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부모님이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는 확신이 없어
이 사실을 감춰야 했고 정치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두고
사람들이 앞에서는 칭송하면서 뒤에서는 험담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소통과 진정성이 없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이른 나이부터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공포를 참을 수 없어서
우스운 행동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소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한여름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돌아다니고 음악에 맞춰 엉터리 춤을 춰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단 한마디도 본심을 말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요조는 앞뒤가 다른 거짓된 인간을 더 이상은 알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은 결국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되고
요조에게 인간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우스꽝스러운 광대 가면 뒤에 숨어들었던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내겐 서로 속이면서도 결백하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혹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 자체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사람들은 끝내 내게 수수께끼를 푸는 묘책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 방법만 알았더라면 난 인간들을 이렇게 두려워하고 또 필사적으로 서비스를 하는 일 없이도 살 수 있었겠죠"

고등학생이 된 요조는 고향을 떠나 도쿄로 오게 되는데
미술학원에서 요조보다 6살 많은 호리키라는 자유분방하고 방탕한 청년을 만나
고등학생 신분임에도 술과 담배와 매춘부와 좌익사상을 접하게 됩니다.
자신이 그토록 불신하는 사람들이 만든 합법의 세계를 견딜 수 없던 요조에게
이 비합법의 세계는 오히려 가식 없고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자신처럼 합법적 세계에 짓눌려 죽고 싶어 하는 카페 종업원 쯔네꼬를 만나
그녀와 도쿄 근처 바닷가에서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쯔네꼬만 바다에 빠져 죽고, 요조는 구조되어 살아남게 됩니다.
뉴스를 떠들썩하게 도배한 이 사건으로 그는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자살 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고향의 가족들과도 연락이 뚝 끊겨버립니다.
이후 아버지는 요조의 하숙집 주인에게 매달 극히 적은 돈만을 보내줄 뿐
요조와는 어떤 교류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 그 누구도 어린 나이의 삶을 등지려 했던
요조의 방황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어루만져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인공포증을 갖고 있던 요조를 더욱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것은
이렇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는 요조를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조의 하숙집 주인과 친구 호리키는 퇴학 이후 학교도 안 가고 빈둥거리는 요조에게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라느니 어리석게 행동하지 말라느니 훈계를 해대고
요조는 크게 성공한 것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쉽게 낙오자 취급하는 세상의 위선에 질리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화가 일을 시작한 호리키의 집에서 잡지사 기자이자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시즈코를 만나게 되는데
시즈코는 수려한 외모로 쉽게 여자들을 홀리는 요조에게 반하게 되고
요조는 곧 그녀의 아파트에서 기둥서방처럼 얹혀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으로 잡지 만화가로 일하며 돈을 벌게 되는데
만화를 그리며 종종 고향집이 생각나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물을 쏟습니다.
그는 그토록 대인공포증과 외로움에 시달렸지만
한편으로는 고향의 가족들이 자신을 구원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조는 차차 일감이 많아지는데 호리키는 자기보다 잘 나가기 시작한 요조에게 질투를 느껴
여자에게 빌붙는 처세술에만 의존해서는 세상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고 훈수를 둡니다.
요조는 인간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은 알지도 못한 채
자신에게 처세술이 있다고 생각하는 호리키의 말이 어이없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요조는 호리키가 세상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고 말할 때의 세상은
바로 호리키 자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리키 자신이 못마땅한 건 세상이 다 못마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요조는 남들이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라는 건 굳건하게 실제 하는 절대불변의 잣대가 아니라
그냥 개개인이 자기 내키는 대로 만들어낸 잣대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강요하는 실체도 없는 잣대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며 생각합니다.
"세상, 나도 이제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싸움에서 이기면 되는 것이며
인간에겐 한 판 승부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는 생존해 나갈 길이 없고
대의명분 따위를 내걸고 이루고자 노력한 목표는 반드시 개인으로 귀결되므로
세상의 불가사의는 개인의 불가사의이고,
대양은 세상이 아니라 개인을 말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나니
난, 세상이라는 큰 바다의 환영을 두려워하는 버릇에서 약간은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닥친 필요에 따라 어느 정도는 뻔뻔스럽게 행동하는 법을 익히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정성껏 돌봐줬던 시즈코 모녀를 버리고
또 다른 술집 마담의 기둥서방으로 떠날 때도
그리고 그 술집 맞은편에 담뱃가게 처녀 요시코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할 때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요조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온전히 믿어주는 순수한 요시코를 자신 역시 신뢰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신뢰라는 감정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시코가 집 안에서 외관 남자에게 능욕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요조는 남을 순진하게 잘 믿는 요시코가 이미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은 건 아닐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제대로 항변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요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었던 존재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리자, 요조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술에 빠져 살며 외설스러운 만화만 그리고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자 이번에는 모르핀 중독에 빠집니다.
그러다 맨 정신을 찾은 어느 날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지나온 삶의 전부를 고백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하고 보듬어준다면 다시 어떻게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 지옥 같은 삶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조에게 답장을 하지 않고 며칠 뒤 아버지의 사주를 받은 친구 호리키와
옛 하숙집 주인이 요조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갑니다.
요조의 절절한 구원 요청에 세상은 정신병원 감금으로 답한 것입니다.
요조는 인간 세계에서 완전히 낙오자로 찍힌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정신병원에 갇혀
'인간, 실격.
이제, 난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됐습니다.'라고 생각하며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3. 마무리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이해와 소통이 사라지고 만 사회에서의 인간의 고독을 보여주고
역설적으로 진정한 이해와 소통, 진실된 교감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해 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도 타인을 불신하고 경계하는 요조의 모습이 조금씩은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앞뒤가 다른 모습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만의 잣대를 세상의 잣대라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서로의 거짓을 뛰어넘어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노력만이 불완전한 우리를 서로에게서 구원해 주는 길이라고 끝내 구원받지 못했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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