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1946년 작 그리스인 조르바
1. 작가 소개
니코스 카잔차키스 1883년 오스만 제국 지하의 크레타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인 크레타의 주권을 두고 발생한 충돌이 발생하던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고
1902년 아테네 대학교에 진학해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재학 중에 에세이와 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고
24살 때인 1907년 희곡 동이 트면이 희곡상을 수상하면서 문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즘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작품 지필과 저널리즘 활동을 병행합니다.
그는 서양 철학자인 앙리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니체의 철학을 공부하면서 커다란 사상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이후 1911년 유학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온 그는 입대를 해서 정부기관에서 잠시 근무를 합니다.
1917년에 오늘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의 등장인물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인물 기오르고스 조르바라는 일꾼과 함께 갈탄 광산 개발 사업을 실제로 벌이기도 합니다.
세계 1차,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다양한 위치에서 활동을 했던 그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 훌륭한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을 글로 담아
소설 11편, 서사시와 희곡 22편, 수필집 9권, 아동소설 및 기획문 등 많은 작품 활동을 펼칩니다.
1957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주요작품으로는 <오디세이아> <그리스인 조르바><그리스고 최후의 유혹> 등이 있습니다.
2. 줄거리
제목에 등장하는 작품 제목에 이름을 올린 조르바라는 인물은 주인공이 아닌
실제 주인공은 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화자인 나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알렉시스 조르바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조르바는 하루하루를 즉흥적으로 사고하면서 행동하는 인물이고 쉽게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중년의 나이에도 야성미 넘치는 외모를 유지한 채로
젊은 시절부터 푹 빠져 지내고 있던 악기 산투르라는 것을 들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오직 자유의지로만 가득합니다.
수많은 여성을 만나서 잠자리를 가지고 여자들의 흔적을 모아 베개를 만든다든가
그릇을 만드는 물레를 돌리고 있는데 검지 손가락이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도끼로
자기 손가락을 내리쳐서 잘라버리기까지 합니다.
이렇듯이 그는 보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는 파격적인 삶의 방식을 가진 인물입니다.
주인공인 나는 30대 남성으로 유산으로 상속받은 크레타 섬에 갈탄 광산을 개발해서
사업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 이런 마음으로 항구에 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앞서 60대의 알렉시스 조르바를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나누고부터 금방 마음을 터놓는 사이로 발전을 합니다.
주인공이 광산 개발을 하러 크레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조르바는
자신이 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면서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말을 합니다.
갈탄광산 광부들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아 주인공과 함께 섬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함께 섬에 도착한 두 사람 카바레 가수 출신의 오르탕스라는 나이 많은 과부가 운영하는 여관에 묻기로 했는데요.
주인공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했던 반면
조르바는 현란한 말솜씨와 능숙한 악기 솜씨를 앞세워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여관 주인 오르탕스와 연애까지 하는 자연스러운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그러고는 곧이어 광산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주인공과 조르바 사이에 잦은 의견 충돌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 느꼈던 조르바의 삶에서 뿜어 나오는 매력, 이런 것들에 현실 뒤로 밀려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조르바가 일을 알아서 하는 스타일인 반면에, 주인공은 또 그런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결국에 두 사람은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을 합니다.
덕분에 주인공은 조르바라는 사람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이런 조르바의 자유분방함과 그만의 사상에 커다란 자극을 받기에 이르렀고요.
지금까지의 의견 충돌은 자유분방한 조르바와 이론적인 자신이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었음 이렇게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조르바를 진리를 깨달은 사람처럼 여기면서
자신의 삶에도 그의 모습을 적용하겠다는 마음을 먹기에 이르는데요.
얼마 후, 주인공은 마을에 살고 있는 소멜리나라는 여성에게 호감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데다가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서
마을 청년들의 욕망 가득한 구애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은 자기까지 끼어들면 소멜리나가 더 혼란스러워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소멜리나는 오히려 친절하고 예의 바른 주인공에게 마음을 열어줍니다.
그러는 동안 조르바는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주인공의 사업 자금을 조금씩 탕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에 큼지막한 사건이 하나 벌어지는데
소멜리나에게 구애를 했다가 거절을 당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서 소멜리나는 마을 사람들의 거친 항의를 받게 되고
결국 마을 사람들이 교회 앞에서 그녀에게 돌을 던지며 위협을 하기에까지 이르는데요.
주인공과 조르바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자살한 청년의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여관 주인 오르탕스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버리는 비극의 연속이 시작됩니다.
주인공과 조르바가 들어온 크레타는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과 타락한 수도승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러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면서 공사를 계속해가지고 결국에는 광산을 완공하게 됩니다.
광산 기공식이 열리던 날 탄광이 무너져 내리면서 결국 이렇게 광산 개발 사업은 허무하게 망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빈털터리가 되고
주인공은 이제 섬 안에 존재하는 광기와 침묵에 대한 기억만 가슴에 가득 담은 채 주저앉아버리지만 조르반은 달랐습니다.
그는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는 대신에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면서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결국 조르바와 함께 춤을 추면서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무소유를 받아들이는 해방감을 경험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하게 됩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찾아 섬을 떠납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주인공이 조르바의 부고가 담긴 편지와 그가 분신처럼 아끼던 악기인 산투르를 자신에게 남긴다는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그 순간 현실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진정한 자유 의지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3. 마무리
이 작품에서 작가가 창조한 인물인 알렉시스 조르바 이 사람은 작가의 사상이 집약된 인물입니다.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조르바.
이 인물은 작가가 생각하는 아주 이상적인 인간상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이 작품은 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조르바의 자유분방함을 아주 여과 없이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신성 모독이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물론 그전부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으로 인해서 매우 불편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이어진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리스인 조르바의 줄거리 중에 수도자가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장면이나
조르바가 신은 악마 이렇게 말을 하면서 난잡한 행동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꼬집히게 됩니다.
결국 작가는 이후에 발표한 소설들까지 전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고
죽어서도 성당 묘지에 묻히지 못한 채 성문 바깥에 묘지를 마련하게 됩니다.
카잔차키스가 평생 동안 노벨문학상 후보에 1951년, 56년 이렇게 두 번이나 이름을 올렸었는데요.
이 또한 그의 무신론적인 성향의 영향으로 수상으로 이어지지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르바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훗날 작가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스승으로 조르바스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가 조르바스와 함께 언급한 인물들이 몇 명 더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 앙리 베르그송,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조르바는 하루하루를 즉흥적으로 사고하면서 행동을 합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누가 뭐라 하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어떠한 시선 그것은 곧 사회의 시선이고 보편적인 생각,
다수의 생각이라 불리는 타인의 시선일 뿐입니다.
이런 껍질을 벗고 인간 자체, 나 자체로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에 자유라는 단어를 얹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