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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와 인간의 대결 허먼 멜빌의 <모비딕>

by 꽃바구니 2023.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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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및 책소개

이 작품은 어떤 파도와 위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삶이라는 망망대해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삶을 헤쳐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가 허먼 멜빌은 1819년에 미국 뉴욕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12살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죽음 이후 급격히 기울어진 가세 때문에 학교도 그만두고
19살에 화물선 선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비며 고래잡이 배도 타고 식인종들과 섬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풍부한 해양 경험을 바탕으로 20대부터 여러 편의 해양 소설을 발표하다가
31살이 되던 1851년 고래잡이를 소재로 한 이 <모비딕>을 발표하게 됩니다.
포악하기로 소문난 흰고래 모비딕과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선장의 대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바다는 우리가 헤쳐나가야 하는 삶 고래 모비딕은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예기치 않은 시련 에이해브선장이 탄 배를 이끄는 바람과 태양과 파도는
우리가 결코 통제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운명과 대자연의 힘을 상징합니다.
에이해브선장은 자신의 운명은 자신 스스로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는 집착
그리고 시련 따위는 용납할 수 없고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딕을 찾아 복수하려는 어리석은 인간을 상징합니다.
에이해브선장과는 다른 시각을 가진 1등 항해사 스타벅도 등장하는데요.
그는 시련에 집착하기보다는 시련으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실리적이고 목표지향적인 인물입니다.
세계적인 커피체인 스타벅스의 이름이 바로 이 스타벅이란 인물에서 따온 것입니다.
스타벅스 공동 창업주 중 한 명인 전직 영어교사 제리 볼드윈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모비딕의 등장인물 이름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자신에게 시련을 안긴 모비딕에 집착하는 에이브 선장의 모습을 통해
삶의 어느 순간 어쩔 수 없이 시련을 맞았다면
다시 어쩔 수 없이 그 시련을 보내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 그 시련 속에 매달려 원망과 분노의 감정 속에만 갇혀 사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삶이라는 바다에 침몰시키는 것과 같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2. 줄거리

화자인 초보 선원 이슈메일은 어느 매서운 크리스마스 아침에
고래잡이에 나설 30여 명의 선원들을 태운 포경선 피쿼드호를 타고 항구를 출발합니다.
피쿼드호는 고래 중에서도 가장 거대하고 사납기로 소문난 향유고래를 잡아
고래에서 얻은 값비싼 머리 기름을 이 배에 투자한 선주들에게 바쳐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었습니다.
거친 바다에서 작살과 창을 던져 고래를 잡는 일은 유난히 험난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배에 승선한 선원들의 면면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알 수 없는 우상을 섬기는 온 얼굴에 문신을 한 식인종에서부터
험악한 과거를 알 수 없는 불안당, 그리고 대륙의 인디언과 이름 모를 섬의 원주민 등 각양각색입니다.
이 배를 이끄는 에이해브선장은 40년간 포병 생활을 해온 베테랑이었는데
신과 운명을 믿지 않는 오만하고 독단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몇 년 전, 태평양에서 사나운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차게 된 후
자신에게 시련을 안긴 모비딕에게 복수하려는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선장은 갑판 위에 선원들을 집합시켜 값비싼 금화를 보여주며
주름 잡힌 이마와 높이 솟은 혹과 구멍 뚫린 꼬리를 가진 흰고래 모비딕을 발견하는 자에게
이 금화를 주겠다며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나를 파괴하여 영원히 의족에 의지하는 가엾은 신세로 만든 건 바로 그 가증스러운 흰고래였다.
대륙의 양쪽에서, 지구 곳곳에서 그놈의 흰고래를 추적하는 것
그놈이 검은 피를 내뿜고 지느러미를 맥없이 늘어뜨릴 때까지 추적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항의하는 목적이다.
어떠냐 나를 도와주겠는가?''
외다리 선장에 대한 동정심과 고래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힌 선원들은
모두 흥분해서 모비딕을 잡겠다고 맹세하며 떠들썩하게 술을 나눠 마십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는 바다로 나온 진짜 목표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믿는 이성적인 1등 항해사 스타벅은
"선장님, 저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의 원수를 갚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복수에 성공한다 해도 고래 기름을 몇 통이나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말 못 하는 짐승한테 복수라니
그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했을 뿐인데 이건 미친 짓이에요"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선장은 고래가 자신을 제멋대로 괴롭혔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며
''나를 모욕한다면 나는 태양이라도 공격하겠어''라고 오만하게 외칩니다.
그는 운명이 자신에게 주는 그 어떤 시련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이해브선장은 모비딕이 매년 비슷한 시기에 출몰하는 것으로 알려진 태평양 연안으로 피쿼도호를 조정해 가고
그 사이 선원들은 본벌이를 위해 고래 사냥에 나섭니다.
돛대 위에서 망을 보는 선원이 멀리서 흰 거품을 내뿜는 고래를 발견하면
피코드어 선원들은 세대의 보트에 나눠 타고 고래 근처로 접근해 작살과 창을 잇는 힘껏 던져 고래를 잡습니다.
그리고 본체의 도르래로 고래의 시체를 끌어올려 목을 자르고 수백 통의 머리 기름을 퍼내고
가죽을 벗겨낸 후 남은 시체를 다시 바다로 떠내려 보냅니다.
그러면 상어 떼가 몰려와 남은 지방을 뜯어먹으며 처리하고
그 사이 선원들은 기름투성이가 된 가판을 청소하고 말없이 휴식을 취합니다.
그러다 어디선가 고래가 물을 뿜는다라는 외침 소리가 들리면 이 진저리 나는 과정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죠.

작가는 이 고래잡이 과정을 우리의 인생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우리는 오랜 고생 끝에 이 세상에서 가장 덩치 큰 동물에게서 비록 적지만 귀중한 경뇌유를 빼낸 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참을성 있게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낸다.
하지만 ''고래가 물을 뿜는다'' 하는 외침 소리에 우리는 또 다른 세계와 싸우러 달려가

젊은 인생의 판에 박힌 일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한다. "
이 작품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이야기와 무관한 고래의 종류와 포경업의 역사와 고래 해부 과정 등에 할애하고 있는데,
그 방대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초보 선언 이슈메일의 생각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고래를 해부해 보아도 피상적인 것밖에는 알 수 없다
나는 고래를 모른다 앞으로도 영원히 모를 것 같다.
고래의 꼬리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머리를 알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고래는 얼굴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고래의 얼굴을 알겠는가?''

작가는 선원들이 아무리 정교하게 해부를 해도 고래라는 거대한 동물의 신비를 헤아릴 수 없고
아무리 세계 곳곳의 바다를 누비고 다녀도 시면 안을 완벽히 들여다볼 수 없듯이
우리는 인간의 삶을 움직이는 운명의 신비와 신의 섭리를 결코 완벽히 헤아리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관장하고 심지어 시련마저 되받아칠 수 있다고 믿는

에이해브선장의 오만함과는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피쿼드는 중간에 다른 포경선들도 마주치는데
에이브 선장처럼 모비딕의 공격으로 한쪽 팔을 잃은 영국배의 선장은

얼마 전 근처 바다에서 모비딕을 목격했다고 말해줍니다.
에이해브선장이 흥분하며 왜 모비딕을 잡아 복수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태연히 ''잡고 싶지도 않았소'' 팔 하나로 충분하지 않소
남은 이 팔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란 말이오라고 되묻습니다.
그는 겁쟁이가 아닌 진짜 현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속해서 바다와 하늘도 피쿼드호에게 모비딕을 쫓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합니다.
거센 폭풍우와 벼락을 내려 배 안의 나침판을 망가뜨려 배가 향하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가게 합니다.
하지만 태양의 위치를 보고 나침반이 고장 났다는 것을 눈치챈 에이해브선장은
다시 원래 향하던 태평양 쪽으로 뱃머리를 돌립니다.
운명이 제시한 항로를 무시해 버립니다.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은 선장의 광기와 집착에 불안함을 느끼지만
상명하복이 철저한 피쿼드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그의 명령에 따라야 했습니다.
어느 날, 모비딕을 쫓다 실종된 아들의 보트를 찾는 일을 도와달라며
같은 고향 출신의 레이첼호 선장이 피쿼드호에 다가오지만
에이해브선장은 이를 냉정히 무시한 채 서둘러 근처에 있을 모비딕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새하얗고 거대한 모비딕이 피콰도호 앞에 나타납니다.
에이해브선장은 불구의 몸에도 불구하고 직접 보트를 내려 작살을 던지며
3일간 모비딕을 추적하며 세 번 맞붙습니다.
중간에 그의 의족이 부러지기도 하고 다른 선원이 바다에 빠져 실종되기도 하고
이에 불길함을 느낀 스타벅은 이제 고래 기름은 충분히 확보했으니 모비딕을 단념하고
가족과 따뜻한 음식과 추억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자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선장은 이를 뿌리치고 모비딕과의 마지막 결전에 올라
모비딕의 눈구멍에 작살을 던지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격에 분노한 모비딕은 자신을 쫓던 보트들은 물론 근처에 있던 피쿼드호까지
사납게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스타벅을 비롯한 선원들은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선원들의 안위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에만 몰두했던 에이해브선장의 광기의 리더십이
모든 선원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입니다.
이를 보고도 모비딕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은 선장은
결국 모비딕에게 마지막 작살을 던지다 작살에 연결된 밧줄에 목이 감겨 바닷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는 끝내 모비딕이라는 시련을 벗어나지 못하고 시련과 함께 가라앉고 맙니다.
바다가 거대한 수위처럼 모든 생명을 뒤덮은 순간
초보 선원 이슈메일만이 구명부표에 겨우 올라타
실종된 아들을 찾고 있던 레이첼호 선장에 의해 구조되며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3. 마무리

작가는 삶이라는 길고 긴 항해 속에서도 끝내 서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각자만의 신념과 믿음 안에 빠져 사는 고독한 인간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외딴섬처럼 외로운 인물들을 한 배에 태운 것입니다.
자신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시련이 주어졌으니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우리를 평생 그 시련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만들고
삶이라는 바다를 해쳐나가지 못하고 가라앉게 하고 말 것입니다.
모비딕에 끌려 바닷속에 침몰하고 만 에이해브선장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망망대해 같은 삶 속에서
대부분의 시련은 역시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운명의 힘에 의해 우리를 찾아오지만
그 결과를 진짜 부당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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