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작가소개
이 책은 제10회 창비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으로, 손원평 작가의 첫 장편 소설입니다.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합니다.
2001년 6회 (씨네21)영화 평론상을 받고
2006년 제 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분을 수상합니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너의 의미>등의 단편영화 각분을 쓰고 연출합니다.
두번째 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 5호 제주 4.3평화문화상을 수상합니다.
청소년 문학상에서 상을 받은 만큼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지만,
사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2.줄거리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는
편도체가 일반 사람들보다 작아서 분노와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노력과 사랑으로 별 문제없이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윤재의 16번째 생일날 다 같이 외식을 하기 위해 나갔다가
한 남자에 의해 할머니는 살해되고 엄마는 식물인간이 됩니다.
윤재는 유치원이 끝나도 엄마가 데리러 오지 않자 홀로 집을 찾아 나섭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몰랐던 윤재는 길을 잘못 들게 되고,
그 길에서 모르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 아이는 바닥에 누워 신음을 내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를 둘러싸고 발길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리던 아이들이 사라지자 윤재는 누워 있던 아이의 상태를 보고
근처 구멍가게에 들어가 주인 아저씨에게 말을 합니다.
태연하게 말하는 윤재를 보고 장난이라고 생각한 주인 아저씨는 느즈막히 경찰에 신고를 했고
한참을 꾸물거린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맞고 있던 아이의 숨이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그 아이가 바로 그 구멍가게 주인 아저씨의 아들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윤재의 다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인 윤재는 분노도, 공포도, 기쁨과 감사도 느끼지 못합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기쁨과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느끼지 못한다는 말과도 같기 때문에,
엄마와 할머니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윤재 할머니는 이런 윤재를 두고 예쁜 괴물이라고 부릅니다.
남들에게는 괴물이라고 느껴질지 몰라도, 가족인 할머니는 그 괴물이라는 이름 앞에 예쁨이라는 글자를 붙여
윤재는 괴물이 아님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를 죽인 그 남자는 보통의 삶을 살던 소시민이었습니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당해 퇴직하고, 퇴직금으로 치킨집을 차리지만,
얼마 가지 않아 치킨집마저 문을 닫고 맙니다.
그러던 와중에 빛도 생기고, 가족들은 그를 떠나고 맙니다.
남자의 삶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사람들의 관심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보다는
그 남자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로 향하게 됩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윤재의 홀로서기가 시작됩니다.
심박사를 만나게 되고, 학교로 돌아가 곤이라는 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곤이은 겉으로는 문제가 많은 아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보다는 속으로 상처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가 오히려 곤이의 순수함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윤재는 조금씩 곤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풍부한 감정을 가진 곤이를 만나면서 윤재의 감정에는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곤이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단순하고 투명했다.
나 같은 바보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세상이 잔인한 곳이기 때문에 더 강해져야 한다고 그 애는 자주 말했다.
그게 곤이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고니가 대체 어떤 애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곤이와의 만남 이후에는 도라라는 여자 아이가 등장합니다.
도라는 곤니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윤재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윤재는 곤이를 통해서는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했고,
도라를 통해서는 감정이 자연스레 솟아남을 경험하게 됩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도라에게 윤재는 왜 달리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도라는 질문의 의도를 오해해 윤재에게 화를 내고 맙니다.
화를 냈던 것에 미안했던 도라는 윤재를 다시 찾아왔고,
이번에는 도라가 윤재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습니다.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던 윤재는 아무도 그런 걸 물어본 적이 없다며 결국 모르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에게 순수한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왜 달리는지가 궁금해서,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순수하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습니다.
정말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가르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어른들의 질문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 아이들은 결국 입을 닫고 맙니다.
그렇게 순수한 질문을 주고받던 윤재와 도라는 서로에게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가게 됩니다.
남들이 곤이를 문제아라 불러도 윤재만은 곤이를 착한 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윤재는 고의에 대해 알게 된다면 할머니와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곤이에 대해 알아가려합니다.
도라는 그런 윤재에게 그 비밀을 알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사라졌던 곤이를 찾아간 윤재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고,
자신 때문에 다치게 된 윤재를 보며 곤이는 윤재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어가던 윤재는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 사건 당시 할머니가 느꼈을 법한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마음속에서는 감정이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 된 엄마가 깨어나 윤재 앞에 나타나면서 마무리됩니다.
3.마무리
알렉시티미아라는 용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a는 부정, 렉시는 영어의 워드, f은 소울을 의미해
영혼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음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고,
감정을 느꼈을 때 신체적 반응은 나타난다고 합니다.
단지 이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을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이런 윤재의 모습을 괴물로 표현해서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윤재에게 더 큰 동정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듭니다.
작가는 감정이 없는 윤재에게 감정이 풍부한 고니를 붙여줌으로써
윤재의 감정에 자극을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전보다 감정을 더 다양하게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윤재가 곤이를 만나 우정이라는 감정을 배워가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감정을 배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소설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반대로 감정을 느끼는 것 또한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우리는 점점 혼자 사는 세상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이 힘들다는 이유로
감정을 내 안에만 가두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설 속 윤재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요?